1.고구려의 음악
고구려의 대표적인 악기는 거문고이다. 삼국사기 악지에는 진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하여 만든 현악기가 거문고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안악 제3호분의 후실 벽화에서 보이는 현악기가 분명히 거문고라면, 고구려에는 이미 357년 무렵에 거문고가 존재하였을 것이다.이 밖에 통구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한 연주자가 17개의 괘 위에 4현이 걸려 있는 현악기를 술대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악기가 바로 16괘 6현으로 된 현행 거문고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고구려의 거문고는 궁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전하여졌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궁꼬는 횡적과 마꾸모와 함께 춤을 반주하였다.이와 같은 고구려 음악의 악기편성은 일본에 전해진 백제악의 편성과 비슷한 것으로 백제악이 풍속무였던 예에 비추어 일본에 전해진 고구려악의 내용도 역시 민속춤임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반주음악도 역시 관현합주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민속음악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예를 들면, 고려사 악지에 고구려의 속악이라고 기록된 내원성,연양,명주 등과 같은 지방의 민속음악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본다.이 밖에 수서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 국내에서는 오현금·쟁·횡,취,소,고 등이 연주되었다. 이 6종의 악기 중 오현금과 피리는 서역악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그 까닭은 서역음악은 중국의 북조, 특히 북제와 북주에서 성행하였던 음악으로서 이와 같은 서역음악이 고구려에 채용되었다는 것은 고구려와 중국 북조와의 교류관계를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언급된 6종의 악기편성에서는 고구려 전기에 보였던 현악기 완함이 제외되고, 대신 오현비파가 수용됨으로써 고구려 음악이 ‘완함시대’에서 ‘오현비파시대’로 새롭게 전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이들 6종의 악기가 합주에 사용된 것이라면, 이 편성은 고구려가 일본에 전하여 준 궁꼬·마꾸모·횡적 등 세 가지 본토 악기에 의한 편성보다 수량면에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기의 내용도 외래악기임을 알 수 있다.그와는 반대로 수의 9부기에 참가한 고구려악과 비교하여 보면 수량면에서는 9부기의 고려악의 14종보다 적고 악기의 내용면에서는 대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오현비파와 피리를 포함한 여섯 가지 악기에 의한 고구려 국내의 음악은 거문고를 포함한 3종의 악기에 의한 민속음악과는 다르고, 수의 9부기에 참가하였던 14종의 악기에 의한 고려기보다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또한 이 6종에 의한 음악의 쓰임새는 중국 9부기에 참가하였던 고려기의 음악이 중국의 황제를 위한 것이었음에 비추어, 외래악기 편성에 의한 고구려 음악 역시 궁중에서 외국사신을 위한 연향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수의 7부기와 9부기에 포함되었던 고려기의 악기는 앞서 살핀 6종의 악기에 수공후,비파 같은 새로운 서역악기가 추가되었고, 여기에 오직 고려기와 서량기에만 쓰였던 제고와 담고 등의 타악기가 추가되었다. 이 14종의 악기편성에서 주목되는 점은 도피피리를 제외한 13종의 악기가 서량기의 악기편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서량기에는 이 밖에도 종,경,국쟁,수공후,소피리 등 5종이 더 있다.이것은 고려기에 사용된 악기가 모두 외래악기에 의한 음악이며, 특히 서량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삼국 중 고구려만이 당시 북조에서 성행하였던 서역음악의 수용에 힘입어 중국 조정의 7부가,9부기,10부기 등에 참가할 수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전기
고려 전기는 신라의 사뇌와 화랑신분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고려 후기와 구분된다. 전기의 음악적 특색은 한국음악사에서는 최초로 송나라의 국가 제사용 아악이 수용된 점과, 송나라로부터 연향용 속악이 새로이 채용되며 당나라의 속악이 폐용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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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음악과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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